‘동양의 작은 유럽, 블라디보스토크'
동부 유럽의 대표국가인 러시아의 동단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위치적으로는 동북아에 속하지만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작은 도시다. 또 유럽소련 극동함대의 기지이자 북극해와 태평양을 잇는 북빙양 항로의 종점이며 시베리아 철도의 종점이기도 하다.
제국 러시아로부터 멀리 떨어진 평화로운 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는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엄청난 개발 잠재력으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또 부산과는 자매 결연을 맺고 있어 더욱 가깝고 친숙한 도시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는 작은 그림 같은 언덕들이 마치 수채화의 화폭처럼 펼쳐져 있어 샌프란시스코나 부산같이 친근감을 더 한다.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의미를 가진 블라디보스토크는 2000년대 부터 태평양의 경제 및 무역 중심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현재 한국, 미국, 인도, 호주 등이 이곳에 영사관을 개설, 교류를 확대해 나가고 했고 외국항공사들의 직항로 개설 움직임도 활발하다.
특히 오는 2014년 아시아태평양경제체제(APEC) 개최도시로 도로와 상징적 건물을 새로 건설하는 등 글로벌 도시정비에 한창이다.

나는 ‘부산-블라디보스토크 교사 학생교류단’의 한 명으로 설렘과 긴장감을 함께 안고 첫 블라디보스토크 방문길에 올랐다.
9월 3일 아침 7시, 김해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경유지인 인천공항에 도착해 일행인 종욱 형, 재호 형, 창민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으로 아침을 때우며 블라디보스토크 행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국제선 비행기 안에서 창공을 바라보다 옆자리에 앉은 종욱, 재호 형들과 앞선 설렘으로 얘기를 나누면서 긴장감을 차츰 녹일 수 있었다.

2시간 20분을 비행해 도착, 아담한 청사에서 입국 수속을 밟았다. 너무도 천천히 아니 삼엄하다는 생각에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무사히 출국장을 빠져나와 졸음을 참으며, 1시간쯤 마중 나온 버스를 타고 도시 풍경을 뒤로 한 채 도로를 달렸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 졌다. 배정받은 숙소는 어두컴컴한 데다 쾌쾌한 냄새까지, 실망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초청해 준 러시아 분들의 성의를 생각하니 그래도 넘길 수 있었다.
첫 방문지는 2차 대전 때 활약하던 모형잠수함(이지만 그래도 원본의 크기로 만들었음)이 있는 사적지였다.
작고 모양새도 너무도 단조로운, 저런 잠수함으로 전쟁을 쳤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적지 위쪽 대학 쪽에서 보는 항구는 매우 환상적이고 친숙했다. 오른쪽(서쪽)에는 석양이 약간 물들어 있었고 왼쪽에는 푸른빛깔이 물들어 있었다.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육중한 군함들을  비롯해, 여객선 어선 등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이 넓디넓은 이 만의 해안가를 꽉 채우고 있다.  어둠이 깔리자 해안가 가로등과 주변 일대의  빌딩에서 퍼져 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이들과 한데 어우러져 그려내는 야경은 세계 여느 아름다운 항구의 밤에 못지않게 환상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늦은 저녁 시간에 쫓겨, 아쉬운 풍광을 뒤로 한 채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나 입맛에 도무지 맞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집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이 때  쓰는 말이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식사를 아침부터 좀 든든히 먹었다.
스케줄 변동으로 예정과는 달리 러시아 청소년 수련원으로 향했다.   환영식에 이어 숙소, 실내 수영장 아이스 링크, 체육관 등 시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우리보다도 소득 수준이나 경제성장도가 뒤 떨어진 인구 300만이 좀 넘는 조그마한 도시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설뿐 아니라 모든 것이 국비로 운영된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에 부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러시아 학생들과의 레크리에이션 시간
모처럼 그들과 손잡고 몸 부비며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했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금 새 친해졌다.
아쉬운 일정을 끝내고 전날의 피로 때문에 초청자의 배려로 단체로 슈퍼에 들렀다. 우리나라의 수출품인 라면 말로만 듣던 초코파이 등이 있어 정말 신기했다. 족히 50% 정도 비쌌지만 밤 시간을 위해 형들과 함께 하나씩 사서 슈퍼를 나왔다. 이국 멀리에서 밤에 먹는 라면의 이 맛, 뭐라 할 수 없었다.

셋째 날에는 블라디보스토크 제 2학교를 방문해 그쪽 학생들의  민속공연을 지켜보고 우리의 답례공연도 보여줬다. 음악은 모르지만 애잔한 곡조에 묻어나오는 그들의 향수를 느낄 수 이었다. 그 중 한 여학생의 목소리는 말고 깨끗해 ‘과연 사람의 목소리 인가’ 하는 생각이 한참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우리의 색동에다 좀 드레시한 민속 의상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질세라 연주를 들려줬다. 형과의 클라리넷 연주는 그럭저럭 넘어 갔지만 준비 시간이 없었는 데다 보면대가 마련돼 있지 않아 한 번 실수로 아쉬움이 남는 독주를 하고 말았다. 다음에 잘해야지 하지만 또 기회가 있을까?
이어 ‘나제즈다’호라는 범선에 갔다. 멋있다는 생각도 잠시 거기에는 선원들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돛을 풀었다 묵었다 하는 것에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고생을 하는 것 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은 잠시 동안(?)만.

넷째 날 제80 학교를 방문해 부산 학생들과 블라디보스토크 학생들이 섞여 두 팀으로 나누어 미니 운동회를 했다. 이 학교는 스포츠 명문으로 러시아의 전통과 역사가 숨 쉬는 학교였다.
한 초등학생의 레슬링 시범은 러시아의 기상을 웅변하기에 충분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또 중국의 쿵푸에 가까운 남녀의 검술 등 역시 무예가 심신의 바탕임을 강조하는 듯했다. 불행하게도 부산 동래초등학교의 동생이 허리를 삐는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 모두들 국가를 떠나 각자가 속한 팀의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이어 태권도 시범을 관람했다. 태권도 시범에는 애국심에서 힘껏 박수가 절로 쳐졌다.

마지막 날, 출국 때와 마찬가지로 아쉬움과 한국으로의 설렘을 안고 마지막 방문지인 제76학교를 방문했다. 이 학교는 한국과도 많은 교류를 한 것 같았다. 현지 학생들은 연예인-빅뱅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한국 노래도 자연스레이 불렀다. 블라디보스토크에도 한류가......또 한 번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러시아 민속인형 만들기를 체험했다. 시간제약 때문에 인형을 직접 만들지는 않고 인형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에 만족해야 해 아쉬움이 컸다.

어쩌면 러시아를 방문한 것보다도 더 소중한 체험을 했다. 마지막 점심을 북한 음식점에서 먹게 됐다. 말로만 듣던 평양 기예단 출신 누나(?)들의 서빙을 받으며 말이다.
음향 기기에서 들려나오는 첫 노래는 ‘반갑습네다’였다. 가사 중 ‘동포 여러분’이라는 구절에서 이상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얼굴도 같고 언어도 같은 데. 북한 사람이니 좀 달라 보이고 조심이 되는 게 아닌가? 어쨌던 우리를 위해 가무까지 서비스한 누님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다시 만나고픈 맘이 들었다. 누나라고 한번 만이라도 불러 볼 것을......
이렇게 블라디보스토크의 일정은 막바지로 향했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도시 외곽으로 나가지 못해 시베리아 산 흑곰과 불곰들, 호랑이들, 아무르 지역의 표범들을 만나지 못한 채 말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친구들과 만남이 그리워진다, 또한 북한 친구의 만남은 언제쯤 이루어질까?